PlusAlpha의 일본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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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03 09 영화 굿바이 관람, 모교방문, 기타등등

2009/03/14 21:55

주말에 남편이 다녀갔다. 결혼식(피로연) 전 마지막 한국방문이었다.
며칠 뒤 아버지 생신이기도 하여 토요일 저녁에 동생부부를 불러 함께 식사를 했다.
일요일에는, 오전에 남편의 한국친구 결혼식에 참석했고, 오후에는 결혼식 준비차 몇 군데 들렀다.
월요일, 일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가 오후에 있어서 모처럼 오전시간이 남아서 영화라도 보기로 했다.
남편과 함께 보려면 아무래도 일본영화가 좋다.(지난 연말에 왔을 때는 “벼랑위의 포뇨”를 봤다.;;;)
그래서 예매사이트에서 상영중인 일본영화를 찾아봤더니 “굿바이”(일본제목 おくりびと)라는 영화가 있었다.
얼마전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을 비롯해 여러 가지 상을 수상한 작품이라 일본에서도 많이 유명해서 남편도 한번 보고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상영관이 한 군데밖에 없었다.
“아트하우스 모모”...? 처음 듣는 영화관인데...
위치를 찾아봤더니 이화여대 캠퍼스 안에 있단다.
대학 캠퍼스 안에 영화관이라니... 예술영화관이라고는 하지만 좀 놀라웠다.
어쨌거나 한국을 떠나기 전에 남편에게 한번 쯤 모교를 보여줄 겸 일부러라도 갈 법도 한데, 마침 잘 됐네.

졸업한 지 17년(헉)... 마지막으로 학교 안에 들어가 본 지 10년...
정문과 이화교가 사라질 것이라는 소식은 몇 년 전에 들었기에 각오는 했지만 정말 많이 변해 있었다. 마음이 쓸쓸해질 정도로...
아트하우스 모모는, 정문과 이화교뿐만 아니라 이화광장, 신단수, 휴웃길, 운동장까지 모두 없애고 세운 ECC(Ewha Campus Complex라나 뭐라나)라는 거대한 건물 안에 위치해 있었다.

ECC. 소실점의 끝에 위치한 것이 본관이다.

영화관, 커피숍, 레스토랑, 서점, 휴대폰 통신사 등등... 학교가 아니라 쇼핑몰 같다.
20년 전에는 넓직한 이화광장이 텅 비어 있어 광장 본연의 역할을 했었는데... 10년 전에 가봤더니 자동차들이 꽉 차 있더니, 이제는 캠퍼스 지하 전체가 주차장이 되었고 거기에 자동차가 가득가득 차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캠퍼스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대기업의 이름을 붙인 처음 보는 낯선 건물들이 여기 저기 서 있었다. 내가 주로 드나들었던, A동과 B동만 있던 종합과학관은 C동이 새로 생겨나 있었다.
그나마 옛날과 변함없이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대강당과 본관이었다.

대강당

본관

이제 이화교의 모습은 마음속에만 남아있겠지...
학교에 애착을 갖거나 소속감을 많이 가진 학생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이화교 만큼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내 대학생활 4년의 상징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겠지.

아래는 몇 년 전 이화교가 사라질 거라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인터넷에서 구해 놓은 이화교 사진인데...
혹시 이것 말고 다른 사진은 없나 검색해봤지만 “중랑천 이화교”만 잔뜩 나오고 더 이상은 구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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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언제 또 다시 이곳에 가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한국을 떠나기 전에 가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대학교는 가봤으니 이제 다녔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도 한 번 가볼까...
옛날에 살던 집도 가보고 싶고...

아 참, 영화는 좋았다.
매우 일본적인 영화였다.
바로 얼마 전(3개월 전) 남편의 이모님이 돌아가셔서 일본 장례식을 보고 오기도 했고, 8년 전 돌아가신 엄마도 생각나서 더욱 각별하게 봤다.
게다가 도입 부분에 오케스트라 연주 장면도 나온다.(주인공이 첼리스트 출신이라서...)
남편과 만나게 된 것도 알고보면 악기, 오케스트라와 관련되어 있기에 이 장면 또한 남달랐다.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로 나는 가끔 죽음이란 것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그때는 죽음에 대해 너무 무지해서 전혀 준비를 못 했고, 그래서 충격도 크고 아쉬운 점이 많았다.
요즘 “죽음학”이라고 하여 죽음을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움직임도 있는 모양이다.
앞으로 시간이 많아지면 나도 이 분야에 관심을 가져볼 생각이다.
사실... 이미 이 분야의 책을 몇 권 사 모아놨다.

지난 설 연휴때 일본에 갔을 때, 예전에 신세를 졌다가 오랫동안 연락이 끊어졌던 H교수님과 연락이 닿아서 만나고 왔는데... 그렇게 건강하고 청년같던 H교수님이, 이제 막 환갑을 지났을 뿐인데, 난치병에 걸려 투병중이라고 했다.
2년 생존률이 20%라고 하는데 이미 1년 반이 지났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봤기 때문에 더 이상 후회도 불안도 없다. 나와 만나는 것은 이게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 라고 담담하게 말씀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어른거린다.
H교수님은 다가오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잘 준비하고 계신 듯 보였다.
이번에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연락해보길 잘했다.
어떻게 사는가 만큼이나 어떻게 죽는가도 중요하다는 말이 새삼 마음에 와 닿는다.

이 영화는 죽음 자체를 논하기보다는 죽은 사람을 보내주는 일에 대한 것을 말하고 있지만
이런 요즘의 나에게 많을 것을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여담이지만... 시체를 진짜 사람이 연기한 것일까, 아니면 마네킹일까 궁금했는데, 영화의 일본 홈페이지에 있는 프로덕션노트를 보니, 시체 역을 연기할 배우를 오디션을 통해 200명 중에서 선발했다고 한다.
주인공의 첼로연주도 열심히 연습해서 직접 한 것이라고 한다.
상 받을만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P.S. 요즘 슬슬 이삿짐 정리를 하고 있는데, 때마침 20년전 학생수첩을 발견, 거기 실려있던 캠퍼스 맵을 올려본다.
       근데 20년전 학생수첩을 이제와서 버리려니 좀 아깝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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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도 캠퍼스 맵 (클릭하면 확대됨)

2009년도 현재의 캠퍼스 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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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C, おくりびと, 굿바이, 생사학, 아트하우스 모모, 영화, 이화교, 이화여대, 죽음, 죽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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